이번 챕터에는 우리가 걸어온 길을 쓰고자 합니다. 처음부터 이러한 문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길을 찾고, 수익을 내고, 안정화가 되고, 규모가 생기자 문화를 만들고, 시스템을 만든 것이죠.
1. 마땅히 해야 할 일
S사 소프트웨어 아카데미 강사로 일을 한 적이 있었어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20여 개 학교에 출강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 중학교에서 맨 앞에 앉아 수업을 열심히 듣던 학생이 학기 수업이 끝나고 회사에 복귀하려던 저를 붙잡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 더 배우고 싶어요.
학생에게 들고 있던 책을 쥐여주고 개발자가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얘기를 해주었지만, 교문을 나오는 제 마음은 편치 않았고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졌어요. 책 몇 권과 동영상 몇 편을 본다고 하여 개발자가 될 수 있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었어요. 개인이 길을 찾기에 개발 분야는 너무 많고, 하나의 깊이도 매우 깊습니다.
회사에 복귀했어요. 여름이었는데 회사는 참 쾌적하고 시원했습니다. 조금 전까지 수업했던 교실은 선풍기를 틀고 있었죠. 좋은 환경, 좋은 동료, 좋은 사무실, 도전적인 일에 만족하고 있지만 저는 제가 있어야 할 자리가 이곳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사직서를 바로 쓴 것은 아닙니다. 일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저는 이제 다시 회사에 다닐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준비했어요. S 금융 그룹으로 이직도 한 번 했습니다. S 금융 그룹은 데이터센터 2층에 숙박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있었습니다. 집에 가지 않았죠. 그래서 상담도 여러 번 했고요. 혹시 집이 없는 것은 아닌지,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물으시더군요. 저는 단지 단기간에 다양한 지식을 습득해야 했을 뿐입니다. 상담에서는 배우고 싶은 것이 많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회사에 다니며 꾸준히 창업 준비를 했습니다. 홈페이지도 만들고, 사업 계획서도 촘촘하게 검토했습니다. 그 당시에 세웠던 모델은 아래와 같습니다. 지금은 많은 부분이 수정되었습니다. 실행하면서 수정하는 것을 스타트업에서는 피벗(pivot)이라고 합니다. 어떠한 이유에서 피벗되었는지도 함께 말씀드려 보도록 할게요.
- 학원, 연구원, 출판사를 설립합니다.
- 학원은 낮은 학원비, 무료 특강 등으로 인재를 양성합니다.
- 학원에서 양성된 인재를 연구원으로 수용하고 함께 프로젝트를 함으로 프로젝트 경험과 경제적인 보상을 제공합니다.
- 출판사는 연구한 성과를 출판합니다. 출판한 책의 인세는 청년들과 함께 분배합니다. 청년은 출판한 책으로 학원에서 강의 할 수 있습니다.
회사는 학원 수익이 아니라 연구원의 프로젝트 수익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당시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센터장님의 ‘제주를 실리콘 비치’로 만들겠다는 뉴스 기사를 보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주에는 카카오 본사도 있고, 이스트소프트, 네오플 등 건실한 IT기업이 있는 것을 보고 상당한 시너지를 기대했습니다. 제주로 내려왔어요.
2. 창업
연구원과 학원, 그리고 출판사를 설립했어요. 학원 인테리어가 끝나고 첫 개강을 할 때쯤에 출판사와 연구원도 나란히 설립했습니다. 이미 상당 부분 준비하고 나왔던 터라 망설임 없이 신속히 진행했습니다.
첫 수강생은 두 분이었습니다. 적은 수강생에 당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당시도, 지금도 제주에 성인 IT 전문 교육기관이 없거든요. 교육 성과를 먼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두 분은 개발과 전혀 관련이 없는 학과의 학생이었는데 컴퓨터 공학을 복수로 전공하여 두 분 모두 대기업 개발자가 되셨습니다.
그 두 분은 저에게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셨어요. 저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두 분이 회사에 들어와서 함께 일하고 싶다고 얘기하시더군요. 제주대학교 링크사업단을 통하면 기업 현장실습을 나올 수 있는데 참여 기업으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이었어요. 그렇게 두 분이 제주대 현장실습으로 단기 직원이 되셨습니다. 프로젝트도 2~3건 진행하고 책도 3권 정도 출판했어요.
두 분이 친구분을 데려오셨죠. 그 친구분들과 프로젝트도 하고 책도 출판했어요. 저는 이 선순환 고리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어요. 하지만 큰마음을 먹고 컬러로 출판한 종이책은 팔리지 않았고, 연구 성과는 크지 않았으며, 직원을 유지할만한 벌이는 벌리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학원 수익이 있어 회사를 운영할 수 있었죠.
학원이라고 큰 수익이 났던 것은 아닙니다. 전단지를 돌리고, SNS 광고를 과하게 집행해봐도 좀처럼 사람이 모이지 않았어요. 온라인 수강생 10만 명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주의 IT 교육 수요 예측은 실패했던 것이죠.
잘 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 옳게 가고 있는 것일까?
어느새 목표는 사라지고 회사 유지와 돈을 버는 것에만 집착하고 있었죠.
스타트업 초기에는 시스템, 문화, 복지를 신경 쓸 단계가 아니라, 생존을 우선시하는 야생의 단계죠. 나도 능력이 있어야 하지만, 능력 있는 사람이 함께해야 하고, 모두가 성과를 이뤄내야만 그 이후 단계를 도모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죄송하게도 회사는 혼자가 되었습니다. 또 그러한 마음과는 상반되게도 홀가분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유가 돌아왔고, 월급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죠. 우선 한 주, 한 주 강의에 정성을 들이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지금 일을 시작한 이유였으니까요. 덕분에 저는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왔어요.
선생님, 저 더 배우고 싶어요.
기술 교육을 가장 허들 없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어디일까? 처음에는 그 공간이 학원이라 생각했습니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고품질의 기술교육을 해주는 학원이요. 그런데 시대가 변했습니다. ‘유튜브’는 공유 미디어의 장을 열었어요. 이제 제가, 회사가 나가야 할 방향이 책이 아니라 ICT 교육 영상 콘텐츠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IT는 시장이 급격하게 변화됩니다. 책으로 출판되면 이미 다음 버전이 나와서 돌아가지 않는 코드가 되어버려요. 또는 사용하지 않는 코드가 되기도 하죠.
- 전처럼 ICT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종이책을 많이 보지 않습니다. 영상 콘텐츠로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 피드백을 받고, 수정이 바로 가능한 콘텐츠로의 이동이 필요했습니다.
- 기존 책의 구조는 청년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 협업, 업데이트하기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영상 콘텐츠를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무료로 진행하던 오프라인 부트 캠프를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제주코딩베이스캠프’ 단 하나의 강의부터 출발했죠.

이 중 상당 부분의 강의는 목적에 맞게 무료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EBS 이솦을 비롯하여 인프런, 탈잉, 클래스101 등 다양한 플랫폼에 공급했죠.
이렇게 차츰 강의가 쌓이고 로드맵이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큰 로드맵이 작성된 것이 아니고, 하나의 강의에서 출발했습니다.
콘텐츠가 쌓이자 학점으로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혁신 대학에 대한 모델들을 살펴보았죠. 에꼴42, 미네르바 스쿨 등 다양한 사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마땅히 우리와 비슷한 모델을 찾지는 못하겠더군요. 우리는 좀 더 가볍고 유연한 졸업제를 만들었어요.
3. 성장
강의 생애주기는 짧았고, 수강생이 올라가는 숫자는 더뎠습니다. 새벽까지 일하기 일쑤였죠. 이상만으로 회사가 굴러가지 않습니다. 현실은 더 냉혹하고, 돈은 생각보다 벌리지 않았으며, 고객의 마음은 고사하고 직원의 마음을 얻기도 쉽지 않았죠. 가설은 계속해서 수정했고, 대부분의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간혹 반짝이는 성공이 있긴 했지만, 별빛이 온 밤을 비춰주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죠.
다행히도 월급이 밀린 적은 없지만, 다음 달 월급이 통장에 없던 경험은 꽤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대표님은 같은 상황을 겪어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 수강생 10만 명을 달성하고, 대기업에서도 콘텐츠를 요청하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연간 오프라인 부트캠프 수강생도 500여 명이 되었죠.
대기업, 유망한 스타트업에서도 직원으로 합류해주셨고 입사 경쟁률도 40:1로 대기업만큼은 아니지만, 제주에서는 꽤 큰 경쟁률을 가진 기업이 되었습니다.


제주 웹 컨퍼런스, 제주 코딩 베이스 캠프, 제주 알고리즘 베이스 캠프 등 제주에서 대표할 만한 ICT 행사도 여럿 만들고요.
우리 회사가 어떤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직원이 5명 정도 될 때부터 하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살아남기 바빴죠. 물론 그때에도 지금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지만 저는 굉장히 분주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대표는 분주하지만, 그 당시에는 더 분주했죠. 그때는 집에서 갓난아기를 옆에 두고 새벽 4시까지 코딩하기도 했습니다.
생존이 첫 번째 순위였던 시기가 지나가고, 기업의 문화와 시스템을 구상할 시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