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의 해안을 걷다 보면 발에 치이는 검은 돌무더기를 만납니다.
투박하고 구멍 숭숭 뚫린 그 암석들은 아무런 의지 없이 그저 그 자리에 던져진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무생물이라 부르고, 변하지 않는 고체의 상징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작가의 시선으로 그 결을 가만히 더듬어보면,
그것은 단단하게 굳어버린 '불의 기록'이자 이 섬이 겪어낸 수만 년의 서사가 응축된 지독하게 역동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흔히 인간의 시간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저 돌의 기공(氣孔) 하나가 파도에 깎여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 앞에 서면, 우리의 백 년은 찰나에 불과함을 깨닫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칼 세이건이 우주 저 멀리서 지구를 바라보며 느꼈던 그 경외감을 떠올립니다.
"이 빛나는 점을 보라.
그것은 바로 여기, 우리 집, 우리 자신인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아는 사람, 소문으로 들었던 사람,
그 모든 사람은 그 위에 있거나 또는 있었던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그 모든 것의 총합이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와 같은 작은 천제에 살았던 것이다. "
칼 세이건이 우주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서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으로 읽어냈다면, 저는 제주의 검은 해안 위에서 이 돌 한 덩이를 '억겁을 견딘 검은 점'으로 읽어내고자 합니다.
광활한 우주 속에 지구가 있듯, 이 돌의 작은 구멍 안에는 마그마의 폭발적인 분노와, 해녀들의 시린 숨비소리, 그리고 우리가 차마 다 말하지 못한 4·3의 붉은 눈물이 모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록은 단순히 지질학적인 변천사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지표 아래 끓어오르던 뜨거운 욕망이 어떻게 차가운 형체라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감옥이 어떻게 다시 풍화와 침식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거쳐 부드러운 모래와 흐르는 물로 해방되는지를 일종의 '존재론적 비망록'입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돌이라는 고체 속에 봉인된 뜨거운 생명력을 복원하고 싶었습니다.
스스로를 깎아내어 타인의 발걸음을 지탱하는 모래가 되고, 마침내 보이지 않는 흐름이 되어 섬을 적시는 현무암의 일대기는,
어쩌면 상처 입은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회복과 순환의 문장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이 작고 검은 점이 들려주는 거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돌의 이야기이자 제주라는 섬의 운명이며, 동시에 우리 삶이 가닿아야 할 깊고 너른 바다에 관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