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한다. 나의 태초는 붉은 점액질의 분노였다. 지하 수십 킬로미터, 엄청난 압력을 견디며 암흑 속에서 유동하던
수천 도의 뜨거운 욕망이었다.
나는 바위가 아니라 흐르는 불이었다
마침내 지각의 가장 약한 고리가 끊어지던 날, 나는 포효하며 수직으로 솟구쳤다.
그러나 해방의 환희는 찰나였다. 지상에 닿기도 전에 나를 덮친 건 거대하고 차가운 매복, 검푸른 바다였다.
"콰광—"
끔찍한 열충격에 차가운 해수가 내 뜨거운 심장을 관통할 때 액체의 혈관들은 순식간에 수축했다.
끓어오른 바다는 거대한 수증기 기둥이 되어 하늘을 가렸고 나의 유연했던 육신은 잘게 찢겨 화산재로 공중에 흩뿌려졌다.
다시 하강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채, 무겁고 끈적하게 추락했다. 바닥에 닿자마자 그 위로 또 다른 내가 덮쳐왔다. 한 겹, 두 겹, 수백 겹...
숨 막히는 퇴적의 하중. 수만 톤의 무게가 내 위를 짓누르며 나를 짓이겨 거대한 띠(層)로 굳혀갔다.
뜨거웠던 자유는 영원히 봉인되었고 차갑고 딱딱한 '형체'라는 감옥이 나를 가두었다.
그렇게 나는 용의 머리를 닮은 이 기이한 해안에서 급격한 냉각이 남긴 무수한 기공(氣孔)들을 흉터처럼 안고 최초의 검고 단단한 숨을 내쉬었다.
나의 삶은, 흐름을 멈춘 순간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