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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기록, 몰입

제 3장 흰 광목천

jeju09 | 2026년 02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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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둥근 등 위로 거친 가죽이 아닌, 얇은 살가죽의 온기가 직접 닿기 시작했다.


그것들의 살랑이고 가벼운 느낌에 어떤 것이 내 몸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 그녀들이 견디는 바다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전해 받았다.
나의 차가운 열전도율은 인정사정없이 그녀들의 체온을 뺏어갔고, 그녀들의 떨리는 맥박은 내 결정(結晶) 구조 속으로 잘게 부서지는 진동이 되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호오이—"


삼십 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수면으로 솟구치는 숨비소리. 그것은 공기의 파동이 아니라, 내 기공(氣孔) 속을 울리는생존의 파동이었다.
추위에 경직된 그녀들의 손가락이 나를 움켜쥘 때, 그녀들의 손톱 밑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마찰은 내 표면을 조금씩 간지럽히는 수줍은 소녀의 간절한 마음.


물질이 끝나고 불턱에 모여 앉은 시간, 포슬포슬하면서도 묵직한(물소중이) 곳에 뚝뚝 떨어지는 짠 바닷물이 내 몸속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것은 염화나트륨의 화학적 침투가 아니라, 살기 위해 쏟아낸 땀과 눈물의 결정체였다.


모닥불의 열기가 내 몸을 데울 때, 그녀들의 젖은 물옷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는 나와 그녀들이 비로소 하나가 되어 내뿜는 뜨거운 안개였다.
가장 얇은 옷을 입고 가장 깊은 곳을 드나들던 여인들. 나는 그녀들의 가냘픈 어깨를 지탱하는 징검다리가 되었고,
그녀들은 나의 거친 피부에 삶이라는 지문을 새겨 넣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살점을 깎고 데우며 제주의 검은 바다를 함께 건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