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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기록, 몰입

어디 감수광

jeju07 | 2026년 02월 08일

1


제주어 타이포 손스케치 디자인


작년 11월, 제주 마을활동가 양성과정에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제주에 온지 2년정도 되었지만 나는, 낯선 환경보다 사람들 사이에 섞이지 못할까 봐 더 걱정이 컸다.
교육 첫날,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물었다.


“타지인인데 괜찮을까요? 육지 사람이라고 무시하면 어떡하죠?”


순간 교실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강사님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제주어를 배우세요.


제주 사투리요. 잘못해도 됩니다.


어설프게 해도 귀엽게 봐주십니다.”


그 말은 위로 같기도 하고, 작은 숙제 같기도 했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단순히 말을 익히는 일이 아니라, 그곳 사람들의 마음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라는 걸, 그때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날 이후 나는 제주 마을을 걷기 시작했다.
돌담길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바람이 스치는 오름을 오르며, 일부러 라도 어르신들이 계신 쪽으로 길을 틀었다. 처음에는 인사를 해야 할지, 그냥 지나쳐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지만, 늘 먼저 말을 걸어오는 쪽은 제주 사람들이었다.


"어디 감수광?"


어디 가세요?


2


제주어 타이포 일러스트 디자인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라 멈칫했고, 그 다음엔 알아도 어색해서 고개만 숙였다. 그러다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입이 먼저 열렸다.


“오름 갑니다.”


완벽하지 않은 발음이었다. 억양도 제주사람들과는 달랐다. 그런데도 어르신들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잘 갑서.”


그 짧은 인사 속에 이상하게 마음이 풀렸다.
마치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오래 알고 지낸 친구의 온기를 받은 것처럼.


‘어디 감수광’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 말에는 ‘당신의 발걸음이 궁금하다’는 관심이 담겨 있었고, ‘혼자 가는 길이냐’는 배려가 있었으며, ‘같이 이야기하며 가도 괜찮겠느냐’는 조심스러운 제안이 숨어 있었다.
육지에서는 길에서 마주치면 대개 고개만 끄덕이거나, 아예 시선을 피한 채 지나친다. 서로의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다.
각자의 삶이 바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멈춰 선다.
그리고 묻는다.


3


제주어 타이포 스티커 디자인


어디 감수광?


그 질문 하나로, 낯선 사람과의 거리도 함께 좁혀진다. 목적지가 같으면 잠시 동행이 되고, 다르면 서로의 길을 응원하며 헤어진다. 제주에서는 말 한마디가 관계의 시작이 된다.
나는 조금씩 마을 사람이 되어갔다.
시장에서는 가격보다 안부가 먼저 오갔고, 버스 정류장에서는 날씨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처음 보는 어르신이 귤 하나를 손에 쥐여주기도 했고, 길을 묻다 차 한 잔을 얻어마신 적도 있었다.
그 모든 순간의 중심에는 말이 있었다.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은 말, 어설퍼도 웃어주는 말, 완벽한 문장보다 마음이 먼저 전해지는 말.
그제야 깨달았다.


4


제주어 타이포 키링 디자인


제주어를 배운다는 건 단어를 외우는 일이 아니라, 제주 사람들의 마음을 배우는 일이라는 걸.
언어는 그 지역의 풍경을 닮는다. 제주어는 바람처럼 부드럽다가도, 돌담처럼 단단하다. 파도처럼 리듬이 있고, 오름처럼 완만하다. 그 말들을 듣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제주의 자연이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글자로 남기고 싶어졌다.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내가 느낀 온기와 감정을 함께 담아서.
멋스러운 글씨체로, 오름의 곡선을 닮은 획을 만들고, 바람이 지나가는 여백을 남기고, 돌담의 질감을 글자 안에 녹여 넣었다.
타이포그래피라는 언어로, 제주어를 다시 불러보고 싶었다.
이 작업은 디자인이기 이전에 나의 경험 기록이다.
타지인으로 제주에 와서, 말 한마디에 마음이 열리고, 사람 사이에 스며들던 시간들, 그 모든 순간이 글자의 형태가 되었다.


“어디 감수광?”


이제 이 말은 내게 단순한 인사가 아니다.
누군가의 하루를 묻는 말이고, 함께 걸어도 좋다는 신호이며, 혼자가 아니라는 안부다.


당신은 어디로 가시나요?


혹시 혼자라면, 잠시 멈춰도 괜찮아요. 제주는 늘 말을 건네는 섬이니까요.
그리고 그 말들은, 조용히 당신을 안아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제주어 타이포그래픽의 디자인의 제작 해석
바람의 흐름
- 각 글자의 세리프가 방향으로 흐르는 듯한 느낌은 제주 특유의 거센 바람을 연상시켰습니다.
돌담의 질감
- 묵직한 수직 획은 제주 돌담의 튼튼함과 세월의 무게를 담아 내었습니다.
사람의 온기
- 부드럽게 휘어지는 곡선은 "어디 가세요?"라고 물으며 다가오는 제주 어르신들의 따뜻한 관심과 정을 시각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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