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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기록, 몰입

바다 _ 230731

jeju21 | 2026년 02월 08일

Rough_chabi_Paper 2


물이 좋다.
부드럽기도 거칠기도
몰아치기도 고요하기도
깊다가도 얇고, 흐르다가도 멈춘다.
마음을 흔드는 데 이만한 매력이 또 어디 있나 싶다.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좋아하나보다 새삼 느끼는 순간들이 종종 찾아오는데,
하나가 물 수자를 부수로 쓰는 한자를 보았을 때이다.


목마를 갈, 섞을 혼, 건널 제, 헤아릴 측, 아득할 묘,
젖을 함, 빠질 닉, 잠길 침, 가득찰 만, 질펀할 만 등등


온갖 상황과 생각을 글자에 담아낸 순간마다
인생이 혹은 기억이 쓰였을 것 같아서 글자 하나가 단편 같다.
왜 빠져드는 느낌에 물을 흘렸는지,
왜 아득한 감정을 물에서 찾는지,
왜 가득차는 마음을 물 속에 빠트렸는지,
획 마다 그어진 이야기가 궁금하다.
이렇듯 좋다고 느끼니 계속 눈에 보이고,
생각이 여러 겹 쌓여서 잡생각의 꼬리가 길다.


또 하나, 좋아하는 만큼 이성이 흐려지는 일이어서
물을 보면 겁이 없다.
폭우가 내려도, 파도가 시야를 덮어도
감당 못하겠다 싶은 소리가 울려도
무섭다는 생각에 움츠러들지 않는다.


이번에 YR언니를 따라 삼양에 서핑을 배우러 다녀왔다.
몇 번의 심호흡을 하며 선생님께 주의를 받아도
마음이 쉽사리 진정이 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좀비 영화를 찍을 때, 아역배우를 쓰지 못하는 이유가 뛰면 웃어서라는데
바닷 속에서 내 마음이 꼭 그렇다.


여하튼 이렇게 좋은 바다여도 서핑은 힘들었는데,
마음이 조급하기도 했지만
뭍에 가까워지면 그만 무서운 마음이 덜컥 들어 중심을 잃었다.
수시로 넘어져 발목을 다친 덕에 공포감이 아주 단단하다.


해서 바다에서는 다친 적이 없나 생각해 보니 그렇지도 않다.
피가 나고 부딪히고, 휩쓸려 살갗이 너덜해도,
숨이 차고 힘이빠져 위험하다 생각해도
끝을 몰라 무서울 바다인데,
역시 좋아서 어쩔도리가 없다.
연애랑 비슷하다.


전날부터 들뜨기 시작해서
만나면 웃음부터 나고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일단 부딪히고 만다.
거리를 둔다는 게 어떤 감각인 지 잊고서
그나마 세웠던 계획과 규칙을 하나하나 깨부시는 하루하루.


앞뒤 맥락 좀 이어보고 찬찬히 행동해야지 숱하게 다짐을 해도
좋으면 이렇게 정신을 놓는다.


고이 담아내고, 참는 법이 없어.
지켜봐야지, 오래 두고 보는 습을 길러야지 하면서도
이내 타고난 탓을 하길 일쑤이다.
허구한 날 이렇게 나자신과 줄다리며 힘을 쓰느라
주변이 잘 안 보이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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