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하나둘씩 바뀌어 가고 있다.
이를테면 직업, 역할 등과 같은 ‘명사’로 떨어지는 것들에서 가치관, 생각 등과 같은 ‘문장’으로 말할 수 있는 것들로
옮겨가는 것처럼.
옮겨가는 과정에서 늘 곁에 두는 단어를 하나만 고르라면, 단연 ‘숨’이다.
숨.

숨이야말로 모든 경계와 조건을 뛰어넘어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부여되는 것이기에.
이 당연하고도 중요한 숨을 어디서, 어떻게 쉬느냐에 따라 흐름은 시시각각 달라졌다.
지금의 나는 ‘곶자왈’에서 가장 깊고, 안온한 숨을 쉰다.

인적이 드문 시간대,
바깥세상의 계절과는 상관없이 일 년 내내 초록빛을 볼 수 있는 곳.
바깥세상에서 보기 어려운 나무와 동식물과 공존하며 저벅저벅 걷는 시간.
바깥세상과는 잠시 멀어질 수 있는 공간.
길은 늘 애매한 방향으로 갈라지고, 땅은 울퉁불퉁하다.
풀과 나무가 자유롭게 자라고, 그 틈을 비집고 바람과 습기가머문다.
그래서인지 걷다 보면 생각도 자연스럽게 흐트러진다.
흐트러지는 게, 약한 게, 휘청이는 게 금기사항이라도 되는 줄 알았던 나는 숨기기 바빴던 그 모든 걸
정면으로 마주하고 나서야 숨을 찾았다. 곶자왈에서 비로소 온전한 숨을 찾은 것이다.

사방에서 말을 걸어온다.
말이 없는데 다정한 말이 들려오는 마법같은 시간.
푸른 목소리와 흙내음 가득한 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