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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기록, 몰입

한라산의 제주조릿대

jeju01 | 2026년 02월 08일

10월 28일, 새벽 네 시.
알람이 울렸다. 밖은 까맣고, 공기가 찼다.
집 밖에 아저씨가 미리 나와 계셨다. 내가 살고 있는 건물 주인 아저씨다. 정이 많으셔서 나와 가깝게 지내던 분이다. 부지런한 분이라 무엇이든 하시는 분이였다. 아저씨가 내 차에 타자 나는 시동을 걸었다.
다섯 시까지 목적지인 영실 주차장에 도착해야 했다. 아저씨와 나는 오늘 처음 조릿대 제거 일을 하러 간다.


처음 이 일을 알게 된 건 단골 미용실 원장님한테서였다. 머리를 깎으러 갔다가 부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라산에 올라가서 풀을 베면 된다고. 보수도 괜찮고, 일단 올라가기만 하면 별일 아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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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 영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인부 열 명 정도가 입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직 어둑컴컴했다. 후레쉬를 켜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산을 잘 타서 내가 뒤처질 때마다 잘 이끌어줬다. 부식이나 장비 같은 것을 지고 올라가시는 분들도 계셨다. 인부들은 거의 쉬지 않고 한번에 올라갔다. 따라가려니 숨이 벅찼다.
윗세오름 표지석을 지나고도 한참을 더 들어갔다. 관광객이 접근할 수 없는 구역이었다.
제주조릿대는 여름에는 녹색으로 자라다가 10월이면 성장이 멈추면서 잎 가장자리가 하얗게 변한다. 10월 말, 그 경계의 시기였다. 녹색과 하양이 뒤섞인 채로 한라산 바닥을 빈틈없이 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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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조릿대는 제주에서만 자생하는 벼과 식물이다. 크기는 10센티미터에서 80센티미터 정도.
현재 이 조릿대가 한라산의 가장 심각한 문제다.
2018년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제주조릿대는 한라산국립공원 전체 면적 중 95.3퍼센트를 덮고 있다고 한다.
2016년 초 환경부는 한라산의 제주조릿대 점유율이 급격히 높아지자, 제주도에 "한라산이 '조릿대 공원'이 되어 국립공원과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경고성 공문을 보냈다.



작업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그냥 풀을 베는 일인 줄 알았다.
그냥 땅에 깔린 조릿대는 문제가 아니였다. 문제는 어린나무 사이사이에 엉켜서 자라고 있는 조릿대였다. 내가 어설프게 조릿대를 잘라내자 뿌리째 제거하라는 말이 계속 들려왔다. 위만 자르면 다시 자란다. 뿌리째 캐야 죽는다. 어린 나무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뿌리째 제거해야 했다. 흙을 파고, 어린나무를 피해가며 최대한 뿌리쪽으로 제거해야 했다. 나 같은 초보자에게 속도가 걸렸다.
한 시간쯤 지나니까 진력이 나 있었다.



조릿대 제거 사업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뤄지는 건 구상나무다. 제주 방언으로 '쿠살낭', 성게나무라는 뜻이다. 잎이 성게가시처럼 생겨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이 나무가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100년간 한라산 구상나무 숲의 면적이 48퍼센트 감소했다.
조릿대가 어린 나무를 촘촘히 감싸면 햇빛을 받지 못한다. 자라지 못한다. 서서히 죽는다.



우리가 하는 일은 조릿대를 제거하는 거였다. 모든 구역의 조릿대를 캐냈고, 그중에서도 어린 나무 주변은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어린나무와 엉켜있는 조릿대 뿌리를 캐려면 나뭇가지 사이를 벌려야 했다. 그러다 놓치기라도 하면 탄성에 가지가 튕겨져 내 얼굴을 때렸다. 이게 참 난감한 거였다. 나도 몇 번이나 가지에 눈을 찔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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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릿대가 죄인이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조릿대가 이렇게 한라산을 뒤덮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1980년대, 한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소와 말의 방목이 금지되었다. 예전에는 말들이 조릿대를 뜯어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개체수가 조절되었다. 천적이 사라졌다. 거기에 기후변화가 겹쳤다. 30여 년 전만 해도 해발 600미터에서 1400미터 사이에서 드물게 확인되던 조릿대가 지금은 해발 1900미터, 정상 부근까지 올라갔다.
조릿대는 죄가 없다. 환경이 바뀌었고, 천적이 사라졌고, 기후가 달라졌다. 조릿대는 그냥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 뿌리를 뻗고, 땅을 덮고, 살아남았다.



하산이 더 문제였다.
조릿대를 제거하느라 온몸에 힘이 빠져 있었다. 올라갈 때도 힘들었는데 내려가는 게 더 힘들었다. 그냥 온몸에 힘이 풀려 있었다. 인부들과 함께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내 발이 느려서 점점 벌어졌다. 어느 순간 아저씨와 나만 내려가고 있었다.
아저씨가 앞장서서 갔지만 내 속도에 맞춰서 기다려줬다. 앞서 가다가 멈추고, 내가 오면 다시 걸었다.
내려와서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다 어두워져 있었다.


며칠 뒤 아저씨가 말했다. 안과에 다녀왔다고. 각막에 상처가 나서 치료받고 있다고. 나한테 얘기하지도 않았던 거였다. 작업 중에 어린 나뭇가지에 눈을 찔린 거였다. 그때 많이 걱정됐는데 지금은 다 나으셨다.


다음 날은 비가 잡혀 있었다. 비가오면 작업을 할 수 없으니 조릿대 제거 작업은 중단되었다.
문자가 왔다.
"내일 작업인원이 많아서 안오셔도 될거 같습니다."
문자에 답을 했다. "알겠습니다"
아쉽지만 서투른 내가 할 일이 아닌가 보다. 빗줄기 너머로 한라산이 흐릿하게 보였다. 조릿대로 인한 문제는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어린 구상나무가 빛을 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는 것도.


아저씨는 계속 일을 다녔다.
나는 조릿대라는 게 그냥 한라산의 일부인 줄 알았다. 그게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 몰랐다. 비교적 아래에 있던 식물이 기후변화 때문에 정상까지 올라왔다는 것도,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하지만 조릿대는 죄가 없다.



제주도는 조릿대 제거를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실험했다. 한라산에 다시 말을 방목하는 것과, 사람이 직접 베어내는 것. 말 방목은 조릿대를 먹어치우는 데 효과가 있었지만, 말이 조릿대만 먹지 않았다. 한라산 고유 식물까지 파헤쳤다. 결국 사람 손으로 직접 베어내는 방식이 채택되었다. 선작지왓과 남벽분기점 같은 고지대를 시작으로, 조릿대를 베어낸 곳에서는 2~3년 후 산철쭉과 털진달래가 다시 자생하기 시작했다. 출현 식물 종수가 37종에서 65종으로 늘었다.
사람이 올라가서 캐는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국립공원이었고, 약을 뿌릴 수 없는 천연보호구역이었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이 장비를 지고 올라가서, 한 포기씩 뿌리를 캐냈다.



조릿대를 제거하기 위해 힘을 쓰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보낸다.
그 일이 생계이든, 노동이든, 혹은 한라산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든 본질은 같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는 오늘도 땅을 정리하고, 산의 호흡을 고르게 한다.


조릿대는 내년에도 다시 자란다.
그래서 이 일은 끝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올라가고, 다시 베고, 다시 걷는다.


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손을 내미는 마음.
그 마음이 이 산을 지금의 산으로 남겨둔다.